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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213

한국의 교육학자들에게 바다에서 실제로 물범을 보는 건 쉽지 않겠지만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을 즐겨본다면 당장 그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겠다. 눈, 코, 입은 잘 갖추고 있는데 귀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두루뭉술하고 미끄덩한 느낌의 몸통에 목은 짧고 앞다리는 앞으로, 뒷다리는 꼬리처럼 나 있어서 해안에서 그 몸통으로 뒤뚱거리며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 '저렇게 불편해서야 어떻게 살아가나' 싶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다. 물에만 들어갔다 하면 별로 움직이지도 않고 비행선처럼 유유히 돌아다녀서 '저 녀석처럼 헤엄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감탄과 함께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유감스럽지만 물범의 능력 평가를 한국의 교육학자들에게 맡기고 싶진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공정성 유지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할 .. 2023. 3. 31.
선생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인가요? (2023.2.24) 선생님! 새 학기가 다가왔네요. 새로운 기대로 각오를 다지기도 하겠지만 올해엔 또 어떤 시련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걸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걱정하고 계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필이면 이때 선생님들을 우울하게 할 뉴스들도 줄을 이었고요. ‘교직의 안정성과 가르치는 일에 대한 사회적 인식으로 선망의 대상이던 교사의 지위가 추락하고 있다’ ‘전례가 없던 유형의 교권 침해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다른 직종에 비해 임금과 복지 수준이 낮은 편이다’ ‘임용 인원수가 초중등을 막론하고 날이 갈수록 줄어들어 교육대학교의 경우 재학생수가 최근 10년간 1/5이나 줄었다’ ‘초중고 학생들의 장래 희망 직업 조사에서 절대 우위를 차지하던 교사 선호도가 자꾸 낮아지고 있다’ ‘교육대학교와 사범대학의 장점이 사실상 사라지.. 2023. 2. 24.
별나라에서 온 대통령? (2023.1.27) 학생들의 과목별 노트는 공식적으론 사라진 것 같다. 지시에 따른 변화는 아닌 것 같고 교과서가 ‘활동형’으로 바뀌면서 생각이나 느낌, 조사, 토론 결과 등을 교과서에 바로 적게 해주었기 때문이지 싶다. 앨빈 토플러(『제3의 물결』)가 공장을 모델로 해서 운영되는 대중 교육에서는 표면상으론 초보적인 읽기와 쓰기, 수학을 중심으로 역사와 기타 과목들도 가르치긴 했지만, 그 배후에 숨겨진 ‘시간엄수와 복종, 기계적인 반복 작업에 익숙해지는 것’ 등 세 가지 덕목(德目)이 산업사회의 기반으로서 훨씬 더 중요한 교과과정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하고, 대부분의 산업주의 국가에선 ‘지금(1980년)’도 여전히 그 덕목들이 그대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탄했던 지난 세기의 교육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때는.. 2023. 2. 15.
단편적 지식주입식교육, 백약이 무효? (2022.12.30) 우리 교육의 수준을 평가해보자고 하면 뭐라고들 할까? 교육부 직원이라면? 서슴없이 세계적 수준임을 얘기하고 싶을 것이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를 보여주면서 교육자라면 거의 누구나 부러워하는 핀란드와 수위를 다투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겠지. 그러면 핀란드 학생들은 오후 3시까지만 공부하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은 11시까지 공부해야만 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주의할 것이 있다. 어느 해외 인사가 깜짝 놀라며 한국에선 세 시간만 공부하느냐고 문의한 일이 실제로 있었으니까 그 11시가 오후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객쩍은 소리지만 하루가 학생들에게도 공평하게 24시간일 뿐인 사실은 다행스러운 일이 분명하다. 시간이 더 허용된다면 학생들은 더 고달픈 세월을 보내야 하리라. 그들의 하루하루는 .. 2022. 12. 30.
내 자식처럼 가르칠 수 있게 해주기 (2022.11.25) “당신의 자녀에게도 그렇게 가르치겠느냐?”는 직설적 질문이 있다. 그 순간 교사는 새로 출발해야 할 듯한 깨달음을 준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뭘 하고 있었지?’ ‘나는 언제 철이 들게 될까?’…) 이런 사례도 있다. 자신의 자녀는 책과 자료를 스스로 찾아 읽고 조사하고 학자처럼 궁리해서 결론을 제시하더라고 자랑하는 어느 교육학 전공 교수에게, 그럼 학생들에게도 일방적 주입식 강의를 그만두고 그렇게 대하고 가르칠 의향이 없는지 물었더니 그 아이는 사고력·탐구심이 출중한 경우이고 일반적으로는 고등학교 때까지 뭘 읽고 배웠는지 기초·기본 지식이 너무나 빈약해서 사고력, 자기 주도력 혹은 탐구심 같은 걸 이야기하는 건 사치에 지나지 않고 토론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이런 관점에 분노를 느끼지.. 2022. 11. 25.
국가교육위원회에 거는 기대 1992년 교육부는 역사적인 선언을 했다. “교육과정 최종 결정권은 교과서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와 교사들이 최종 결정한다!”(제6차 교육과정) 교사들에겐 교육과정 같은 건 안중에도 없던 시절이었다.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담긴 교과서대로만 가르치면 하등 문제가 없었다. 수업을 공개한 뒤 교장·교감이나 장학사가 생경한 책자를 펴들고 “이 수업을 교육과정에 비추어보았더니 어쩌고 저쩌고…” 하면 ‘높은 분들은 저런 문서를 보는구나!’ 생각했을 뿐이었다. 교육부에서는 교사들이 궁금해 하지도 않는 일들을 행정력을 총동원해서 설명하고 설득했다. “이제 교육과정 결정권을 교육부와 교육청, 학교가 분담하게 되었다” “교육부는 기준을 개정하고, 교육청은 지역 지침을 만들어 시행하고 학교는 최종적으로 그 학교만의 교육.. 2022. 10. 28.
“교단에 드러누워서 촬영하고…” “그래서요?” (2022.9.30) 선생님! 무척 괴로우실 것 같아요. ‘무너지는 교단’ ‘교실은 공포 공간’ ‘교단에 드러누워서 촬영하고 웃통까지 훌러덩’ ‘선생님에게 침 뱉고 폭행까지’ ‘교권 침해 보험 드는 선생님들’… 기사들을 살펴봤어요. 7년 전 경기 이천 어느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가 출석을 불러도 대답이 없어 결석처리를 하자 학생이 빗자루로 교사를 때리고 침을 뱉은 일, 얼마 전 충남 어느 중학교에서 한 남학생이 수업 중에 교단에 드러누워서 여교사를 촬영하는 듯한 영상이 공개된 일… 한국교총은 61%의 교사가 날마다 학생들의 수업 방해나 욕설에 시달린다고 했습니다. 담임에게 “인간쓰레기” “대머리 XX”라고 대놓고 욕도 하더라는 제보도 있습니다. 한 방송은, 하필이면 한 개그맨이 예부터 스승은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된다고 해서.. 2022. 9. 30.
누구를 위한 학제개편? (2022.8.26) 초등학교 취학연령을 한 살 낮추는 학제 개편 논란으로 전 부총리겸교육부장관은 취임하자마자 물러났다. “제가 받은 교육의 혜택을 되돌려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달려왔지만 많이 부족했다” “논란의 책임은 저에게 있으며 제 불찰이다” “우리 아이들의 더 나은 미래를 기원한다”는 것이 사퇴의 변이었다. 이것으로 그 진정성을 보여주었지만 부총리 혹은 장관이라는 직책은 진정성만으로는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로써 왈가왈부가 필요 없게 되었고 후임자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사퇴한 장관의 부산하던 기자회견장을 떠올리며 그런 고위직은 부처 직원들과 어떤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걸까, 좀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우선 단 며칠 만에 물러난 이번 경우에는 특별히 기억할만한 관계가 이루어지지도 않았을 것 같고 .. 2022. 9. 5.
혁신학교 교육을 위한 아주 단순한 조언 (2022.7.29) 지금 하는 일을 바꾸라고 하면 선뜻 그렇게 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순순히 따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고 ‘어떻게 하라는 거지?’ ‘또 인고의 시간을 겪겠구나’ ‘내가 그 과정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안 하면 안 될까?’… 고민에 싸일 것이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흔히 경험하는 일이지만 그 혁신을 주도하는 측이 아니라면 두려워하고 귀찮아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따르는 건 그 당위성 때문이다. 혁신은 또 다른 혁신을 가져올 가능성을 가진다. 그 변화를 두려워하고 기피하고 싶은데도 혁신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그 변화가 바로 발전임을 부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교육학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렇게 세상을 바꾸어왔고, 지금 학교에서 ‘교육혁신’의 이름으로 고군분투하는 선생님들 또한 그런 마음가짐으.. 2022. 8. 29.
학교는 정말 왜 가는 걸까? (2022.6.23) 학생들은 왜 학교에 가는 걸까? ① 딱히 갈 데가 없어서 ② 꼬박꼬박 가라고 부모가 닦달을 해서 ③ 교장과 담임이 기다려서 ④ 교육은 4대 의무 중 하나라는 건 다 아는 사실 아닌가? ⑤ 졸업장이 있어야 뭘 할 수가 있으니까 ⑥ 점심을 제공하니까 ⑦ 친구들을 만나러 ⑧ 자꾸 가면 무슨 수가 날 수도 있으니까 ⑨ 장차 꿈을 이루어 부모 은혜에 보답하려고 ⑩ 좋은 대학에 진학하려고… 답이 있을까?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 극성을 부리던 코로나가 진정 국면에 들어서고 전면등교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새삼스럽게 ‘꼭 학교에 가야 하나?’ 누군가 갖고 있지 싶은 그 의문, 사실은 우리가 진지하게 대답해야 마땅한 그 물음의 진정성을 부각시켜보려고 객쩍은 답들을 열거해보았다. 지금 의문을 갖고 있는 그 학생이 바라는 혹은.. 2022. 6. 24.
우리 선생님의 실종 (2022.5.27) 선생님들이 학부모들에게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하는 건 단지 교육적 차원이었는데, 학부모 중에는 그 정보의 취득이 무슨 대단한 권한인 양 착각한 경우가 흔했다. 수업 중이든 회의 중이든 퇴근해서 휴식 중이든 걸핏하면 곤혹스럽게 하고 심지어 반말을 ‘찍찍’ 해대기도 해서 2019년 9월, 마침내 그런 행위를 교권침해로 규정했다. 서울교육청에서는 “희망하지 않을 경우, 전화번호를 비공개”로 해서 사생활을 보호하기로 했고 경기도에서도 그 필요성(사생활 침해, 인맥 공개, 부정 청탁 우려 등)과 법적 근거(개인 정보 보호)를 들어 교사의 연락처를 알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희망하지 않을 경우” 혹은 “알리지 않아도 된다”였지만 지금은 공식적으로는 전화번호를 거의 알려주지 않는다. 그 대신 e알리미, 아이알리미,.. 2022. 5. 27.
학교교육의 변화를 가로막아 되돌려놓는 것 (2022.4.29) 세상이 삭막하다는 느낌일 때 학교를 바라보면 새삼스럽게 아, 저곳이 있지 싶고 아늑한 교실, 가슴 트이는 운동장, 정원, 꽃밭, 놀이터… 추억 어린 곳들이 옛 생각을 불러오기도 한다. 학교는 마지막 남은 마음속 안식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그 학교도 다 변했다. 우리가 가슴속에 담고 있는 그 학교는 실제로는 세상 어느 곳에도 남아 있지 않다. 엄청나게 변해서 추억을 그대로 보여줄 만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 옛 세대는 콩나물 교실에서 공부했지만, 지금은 많아 봐야 스무 남은 명이다. 아이들은 각자 책상 하나씩을 차지한다. 구타는 사라졌다. ‘사랑의 매’니 뭐니 하고 회초리 없이 어떻게 교육을 하겠느냐면서 그걸 존치하려는 교육자들이 있었고 ‘독서벌’ ‘운동벌’ ‘한자·영어 쓰기벌’ 등 ‘대체벌’이.. 2022.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