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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2021/1014

피그말리온의 기원에 응답한 갈라테이아(2021.10.29) 조각가 피그말리온의 아내 갈라테이아는 본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빛깔 좋은 상아에 지나지 않았었다. 피그말리온은 여성에겐 결점이 많다고 여겼다. 좋은 사람이 수없이 많은 걸 모르고 여성이라면 곧장 혐오하면서 독신으로 지내겠다고 다짐했다. 바보! 그러다가 예쁜 여성 입상(立像)을 조각했는데 그게 그의 이상형이었겠지? 그 아름다움은 세상의 어떤 여성도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의 솜씨는 그야말로 완벽했으므로 그 여인상이 나무랄 데 없을 건 당연한 일이었다. 피그말리온 자신도 그 작품에 만족한 나머지 그만 그 여인상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 입상이 살아 있는 것 같아서 만져보기도 했는데 그게 상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할 때마다 실망에 빠지곤 했고 그러면서도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그 여인상.. 2021. 10. 29.
김수영 「눈」 이 파일은 가짜입니다. 미안합니다. 10년 전쯤 어느 눈 오는 날 오후, 김수영 시선 《거대한 뿌리》(민음사)와 최영미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시》(해냄)를 보며 이 시 감상문을 썼었는데 일전에 곧 올해의 눈이 내리겠다 싶어서 들여다보다가 뭘 잘못 만져서 그 파일을 잃었습니다. 저녁 내내 앉아 있어도 그 감상문 시작 부분은 떠오르는데 다른 부분은 제대로 기억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유난히 댓글도 많았었으므로 그것도 가슴 아팠습니다. ............................................................................................................................................................. 2021. 10. 27.
「꾀꼬리도 지우고, 진달래도 지우고」 꾀꼬리도 지우고, 진달래도 지우고 박상순 그의 걸음은 빠르고 내 걸음은 무겁다. 자루 같은 가방 두 개를 멘 그의 걸음은 빠르다. 나는 조금 힘을 내서 그의 걸음을 따라잡는다. 그의 가방 하나를 내 어깨에 걸친다. 그의 걸음은 여전히 빠르다. 다시 그의 걸음을 쫓아가서 나머지 가방도 내 어깨에 걸쳐놓는다. 내 걸음은 무겁다. 손에 들거나, 어깨에 둘러메거나, 등에 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무겁다. 매일 무거워져서, 이것 하나 없애고, 저것 하나 없애고 빈 손에, 텅 빈 얼굴로 기억도 덜어내고, 추억도 덜어내고, 슬픈 꾀꼬리도 지우고 웃음 짓던 진달래도 지우고, 외톨이 쇠붙이는 파묻고, 나만의 별똥별, 나만의 새벽별도 버리고, 현재는 톡톡 털어서 햇볕에 말리고, 바삭하게 말리고, 어쩌면 무척 가벼울지도.. 2021. 10. 25.
불면(不眠) : 끙끙거리지 말고 벌떡 일어나 앉아야지! 불면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나이트 스쿨》이란 책을 읽으며 알았다. 며칠 시달린다고 곧 죽진 않지만 잠들지 못해 뒤척이는 밤은 괴롭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프랭클은 이렇게 썼다(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Man's Search for Meaning, 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 2005). 인간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자 또한 의연하게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입으로 주기도문이나 셰마 이스라엘을 외울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그 '무거운' 책에서 보았지 싶다('그 책 어디 있지? 또 버렸나?'). 역설의도는 수면장애의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 불면에 대한 지나친 걱정은 결국 어떻게든 잠을 자야겠다는 과도한 의욕을 갖게 하는데, 이것이 그 반대로 잠을 잘 수 없게 만드는 것.. 2021. 10. 23.
음악이란 어떤 것인가? "저는 독서밖에 할 일이 없습니다." "그건 좋은 일이네요?" 정말 그럴까? 독서가 좋은 일일까? 독서가 좋은 일이라고 평가해준 그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고, 나는 하염없이 독서나 하고 앉아 있는 것이 그에게 마치 무장해제를 시켜주는 듯한 것이어서 그런 반응을 보이게 하는 건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너무 팍팍한 해석이겠지? 그럼 독서가 좋은 진짜 이유는 어떤 것일까? # "베토벤이 지금 이 연주회장에 있어요. 그의 영혼이 지금 이 연주회장에 있다면 바로 저 근처에 있을 겁니다. 지휘자가 보여요? 저 사람이 바로 베토벤이에요. 그가 베토벤을 해석할 거예요. 그가 바로 베토벤이죠." "내 하느님에는 이름이 없어요. 베토벤도 내 하느님이 될 수 있죠." 『솔로이스트』라는 실화소설에서 정신분열증을.. 2021. 10. 21.
내가 건너게 될 다섯 강(江), 그리운 강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돼지로 변신시키고 오디세우스에게도 "돼지가 되어라!" 했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자 이번에는 태도를 바꾸어 손을 맞잡고 화려하고 달콤한 잠자리에 들자고 유혹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통하지 않자 돌연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그 멋진 남자를 호화로운 침실의 이불속으로 끌고 들어간 고약한 여신입니다. 오디세우스는 키르케의 그 궁전에서 무려 1년간 먹고 마시고 놀며 지내다가 어느 날 이제 그만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누가 봐도 엉뚱한 곳에서 너무 오래 지체했고 아무리 이야기지만 그만하면 산전수전을 다 겪은 것 같았는데 여신은 딱 잘라서 "안 된다!" "고생 좀 더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하기야 아직 나는 이 책을 겨우 반쯤 읽었을 뿐이.. 2021. 10. 19.
나이트 스쿨 선언문 리처드 와이즈먼이라는 사람은 잠과 꿈에 대해 자신이 알아낸 모든 걸 다 설명해주고 난 뒤 제대로 잠을 못 자는 사람들이 잘 자고, 근사한 잠을 잘 수 있도록 자신이 알아낸 내용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 열 가지 나이트 스쿨 기법을 모아 "선언문"을 만들었습니다. 책에는 그 열 가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있지만 제목과 열쇠가 되는 단어를 옮겨놓겠습니다. 나이트 스쿨 선언문 모든 사람이 밤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 줄 열 가지 기법을 소개한다. 1. 침실로 향할 때 졸음을 느끼고 싶다면...... 잠을 쫓는 파란빛 추방하기 2. 빨리 잠들고 싶다면...... 긍정적인 이미지와 역설의 원리 활용하기(매우 재미있는 각본으로 연기한다고 상상하다가 그래도 효과가 없으면 차라리 아예 깨어 있도록 한다.) 3. 잠.. 2021. 10. 16.
잠과 꿈의 과학《나이트 스쿨 NIGHT SCHOOL》 리처드 와이즈먼 《나이트 스쿨 NIGHT SCHOOL》 한창호 옮김, 미래엔(와이즈베리) 2015 "오늘날 대부분의 학생들이 심각할 정도로 수면 부족 상태에서 등교하고, 성인의 수면 부재는 기록적으로 높으며, 수면제에 대한 수요가 해마다 높아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간관계, 건강, 생산성을 망치고 있는, 좀비 같은 수면 박탈 상태"에 있으므로 지금 우리는 밤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꾸어야 하며 혁명과 다름없을 정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리처드 와이즈먼은 명쾌하게 주장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혹시, 밤에 잠은 잘 주무시나요? *수면의 과학 : 수면 중 두뇌와 신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 수면 부족의 치명적 위험 :수면이 부족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최고의 잠을 자는 비결 : 갓난아기처.. 2021. 10. 15.
혼자 가는 길 여기는 산으로 둘러싸인 곳입니다. 동쪽으로는 마당 건너편 계곡이 숲으로 이어집니다. 새들의 희한한 대화를 들을 수 있고 모기 같은 벌레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저녁을 먹고 현관을 나서는데 때아닌 매미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둠이 짙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워낙 조용하니까 내 이명(耳鳴)이 또 장난을 하나?' 멈춰 서서 작정하고 들어 보았습니다. 날개로 땅을 쓰는 소리도 함께 들립니다. 아! 소리는 바로 발밑에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얼른 스마트폰의 손전등을 켰습니다. 이런! 날개를 퍼덕이며 매미가 울고 있습니다. 구월 초사흘, 한로(寒露)에 매미라니! 하루하루 기온이 떨어져 그에게는 치명적일 것입니다. '저 숲으로부터 매미소리가 들려온 것이 칠월이라면 팔월 한 달 어디서 무얼 하며 지내다가 여기를 찾.. 2021. 10. 13.
안병영 에세이 《인생 삼모작》 안병영 에세이 《인생 삼모작》 21세기북스 2021 우리나라에선 유일하게 두 번 교육부 장관을 지낸 분이다. 김영삼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때였고, 공교롭게도 그 두 번 다 근무 기간이 겹쳤다. 곁에서 보면 어이없지 않은가 싶은 분도 없진 않지만 이런 분도 있나 싶은 분도 있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말단 직원이어서 개인적으로 장관을 만날 일은 없었지만 노무현 대통령 때는 자주 가까이에서 말씀을 듣고 사사로운 격려와 함께 심지어 꾸중을 듣기도 했다. 나중에 내가 교장으로 나갔을 때 부총리직에서 물러나 연세대 교수로 복귀했을 때였고 학교를 찾아와 아이들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각각 강의를 해주기도 해서 나로서는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언젠가 보좌신부님이 교리반 아이들을 모아, 성당에서 봉사해야 할 역할에 따라 .. 2021. 10. 11.
정해진 칸에 예쁘게 색칠하기 예전엔 이런 학습지가 없었습니다. 등사기가 있긴 했지만 그건 거의 시험지 인쇄 전용이었고 '학습지'라는 게 나타난 건 복사기가 보급된 이후입니다. 그래서 그 예전에는 색칠하기, 숫자를 차례로 이어서 모양 찾기 같은 과제는 여름 겨울 방학책에나 들어 있었고 아이들은 그런 걸 단시간에 해치우고는 "아니, 오늘 공부는 벌써 끝장이 났잖아!" 하고 호기롭게 일어서는 행복을 누렸습니다. 이런 공부가 즐거운 건 이미 윤곽이 그려져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어떤 색을 선택해도 좋은 자유를 누리며, 거의 아무나 할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생각하니까 '누워서 떡먹기' 같은 이런 것도 참 좋은 공부가 되는구나 싶습니다. 얼마나 삭막합니까? 마스크를 쓴 채 하루 일과를 치러야 한다는 건 얼마나 가혹한 일이겠습니.. 2021. 10. 9.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김대웅 편역, 아름다운날 2018 제우스의 후손 라에르테스의 아들 오디세우스가 연합군 리더의 한 명으로 난공불락의 트로이 프리아모스 성을 10년 만에 함락시킨 뒤, 다시 10년 온갖 풍상, 고난을 다 겪고 귀환하여 아내 페넬로페의 청혼자들(계산해보니까 '보좌관' 빼고도 무려 110명)을 물리치고 다시 왕위에 복귀했다는 이야기. 이건 해피엔딩이고 권선징악이어서 따지고 보면 크건 작건 인간의 길이 다 이와 유사하다는 얘기는 성립될 수 없겠다. 전라도 어디에서 오셨다는 염길환 선생님, 여느 선생님은 시험문제를 출제할 때나 사용하는 등사원지에 8절 4면 혹은 6면, 혹은 8면을 혼자 다 쓰시고 아름다운 감청색 잉크로 한 장 한 장 직접 인쇄하시는 학교신문에 이 '거창한' 얘기를 연재해주셨.. 2021. 10.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