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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교과서

'송어 5중주'? '숭어 5중주'? 어느 게 나을까?

by 답설재 2015. 6. 23.

출처 : MK뉴스(2013.6.24) [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슈베르트의 '송어';일본 서적 베끼면서 '숭어'로 오역

 

 

초등학교 교과서에 이 곡이 수록된 걸 보고 전에 썼던 글이 생각나서 몇 자 수정하여 옮겼습니다.

 

딸아이 입에서 '편수자료' 이야기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그건 교과서 연구·개발에 참여하는 일부 학자, 교원들이 열람하는 자료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생이 교과서에 나오는 슈베르트의 그 곡이 "송어인지, 송어 또는 숭어인지", 즉 "송어만 옳은 건지, 송어가 옳지만 예전처럼 숭어라도 해도 되는지" 알고 싶어 한다고 했을 때, 얼핏 어디서 그 기사를 본 것 같아서 "숭어였는데 송어로 고쳤지, 아마?" 했더니 그 정도는 이미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그 대학생의 지도교수가 편수자료라는 게 있다면서 거기에서 둘 다 인정하고 있다는 쪽으로 단언(斷言)하는데 대해 그 학생은 아무래도 그게 의심스러워서 확실하게, 그러니까 그 자료에 정말로 그렇게 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아, 이건 간단하게 넘어갈 일은 아니구나.' 싶었고, 지금 내가 편수자료 최신판은 갖고 있지 않으며, 어디 관련 기관 사이트의 편수자료 파일도 그 상황, 그러니까 "송어인지 숭어인지, 아니면 송어 또는 숭어인지" 판가름한 '교육부 조치'가 반영되어 탑재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자료일 것이라는 사실도 떠올랐지만 일단 호기롭게 대답했다.

"알았어! 내가 교육부 있을 때 음악 편수관 하던 사람에게 물어볼게. 기다려."

 

이튿날 아침에 그에게서 시원한 연락이 왔다. "거울 같이 맑은 강물에 송어가 뛰노네. 나그네 길 멈추고 언덕에 앉아서 그 송어를 바라보고……"로 이어지는 가사를 봐도 '송어 또는 숭어'가 아니고 '민물고기 송어'가 옳으며 편수자료에도 분명히 '송어'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당장 딸아이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더니 이런, 이번에는 또 딴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어젯밤, 그 학생에게 우리 아빠가 음악 편수관을 지낸 사람에게 직접 연락해서 알려주기로 했다니까 오늘 이른 새벽에 전화를 하더니 세상에! 밤새 잠을 못 이루었다며 얼어붙어 있더라는 것이었다.

"음악 하는 분들끼리는 아주 빤해서, 편수관을 지낸 그분이 우리 교수님께 이야기해버리면 저는 죽어야 할 거예요."

 

그 걱정을 일축해버리도록 하라는 부탁을 하고, 두 가지를 생각했다.

 

우선, 이건 순전히 개인적이고 수준 낮은 정서지만, 나 같아도(교수가 아니어서 다행일까?) "송어도 되고 숭어도 된다."고 대답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점이었다. 일단 발음으로도 '송어'보다는 '숭어'가 훨씬 낫고('송어네 가족'이 들으면 몰매 맞을 말이겠지만, 그렇지 않은가? "송어, 숭어, 송어, 숭어……" 두 낱말을 번갈아 되뇌어보면 숭어에게는 뭔가 더 있어 보이지 않는가?), 실제로 우리 동네 '송어양식장횟집'에 가면 언제라도 아주 싼값에 실컷 먹을 수 있는 것이 송어지만, 숭어라면 내가 먹어본 기억조차 없는 어떤 고고한 자태의 물고기일 것 같아서 더 신비롭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싶었으며, 그렇다면 평생 "숭어, 숭어" 하고 가르친 것이 허망할 것 같기도 했다. 이어서 나는 송어와 숭어는 도대체 어떤 물고기인지, 슈베르트 피아노 5중주 '송어'는 도대체 어떤 곡인지 알아보자고 생각했고, 그리하여 그날 저녁 인터넷을 열어놓고 백과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송어와 숭어에 대한 내용을 분석하는 '연구', 이어서 피아노 5중주 '송어', 가곡 '송어' 감상에 빠져들었다.

 

두 번째 생각은, 교육부에는 아무래도 각 교과별로 장학관이나 편수관이 한 명쯤은 있는 것이 좋겠다, 아니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교육부는 우리나라 교육을 위해 중요하고 큼직큼직한 일을 아주 많이 하고 있어서 웬만해서는 그 일들을 열거하기가 불가능하지만(지금 당장이라도 교육부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단 한 가지, 이 세상 누구라도 알고 있을 만한 일은, 전국의 그 수많은 초·중·고등학교에서 하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일이 국어, 수학, 영어, 사회, 역사, 도덕, 과학, 체육, 음악, 미술, 기술·가정 등 교과목별 수업이니까, 그걸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대해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인력이 한 명쯤은 있어서 그 방향을 제시하고 제대로 하는지 살펴보고 지도해주는 일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싶은 것이다. 다른 일을 하다가 말고 "음악이라면 내가 전문이지!" 할 때의 그런 전문가가 아니라, 말하자면 바로 그 일을 맡아서 송어인지 숭어인지, 혹은 송어라고 해도 좋고 숭어라고 해도 좋은지 판단해주는, 일본 같으면 문부과학성에 있는 51인의 교과서조사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전문가가 우리 정부에도 있어야 할 일 아닌가 싶은 욕심이 나더라는 것이다.

 

 

 

노승종 외(2015.3.1), 초등학교 음악 5~6(교학사)

 

 

석문주 외 (2015.3.1), 초등학교 신나는 음악 5~6(동아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