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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그림과 사진

그리움

by 답설재 2014. 4. 30.

 

 

 

 

 

그리움

 

 

 

 

 

 

 

 

 

 

    Ⅰ

 

  『현대문학』 1월호 표지 그림입니다. 아련한 향수 같은 걸 느꼈습니다.

 

  '저 무수한 불빛 하나하나에 사람들이 들어 있겠지…… 누구에겐가 그립고 아름다운, 혹은 고마운 사람들…… 내가 모르는 사람들…… 어쩌다가 알게 된 몇 사람, 그러다가 지금은 헤어지게 된 그 사람들도 들어 있는 저 불빛……'

 

 

    Ⅱ

 

  현직에 있을 때였습니다. 남녘 어느 곳에서 출장지를 옮겨가던 초저녁에 그 들판 건너편 멀리 산 아래 마을에서 하나둘 불이 켜지는 것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 저곳에도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어서 저 하나하나의 불빛을 밝히고 있구나…… 지금쯤 아내도 불을 밝히고 있겠지.'

  불현듯 그가 보고 싶었습니다.

 

 

    Ⅲ

 

  1996년, 일본 나가노 어느 호텔에서 한밤에 창밖을 내다보며 그런 감상에 젖은 적도 있습니다. 호텔 뒤편 들판은 아주 한적해서 불빛이라고는 거의 가로등뿐이었습니다. 그날 낮에는 일행이 모두 민박집으로 갔으므로 모처럼 홀가분하게 그 들판을 거닐며 '후루룩' 메뚜기 떼가 날아오르는 걸 구경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한밤의 들판을 소리없이 지나가는 전동차를 바라보다가 '어처구니없는 망언'을 늘어놓는 일본인들을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살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저 작품에 대해 화가가 써놓은 글을 보고 놀랐습니다.1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2

 

  「Darkview」는 세상에 대한 공포와 내 존재의 미약함이 겹쳐져 심리적 공황 상태를 느꼈던 어느 한순간의 체험에서 시작된 시리즈 작업이다. 그날 나는 이 거칠고 삭막한, 잔인한 도시에 홀로 내버려졌다는 불안과 고통 속에서 창밖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순간 창밖 대상들 하나하나의 존재감, 움직임은 깡그리 사라지고 오로지 빛과 검은 배경만 남는 환각적 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쓰기도 했습니다.

 

  ― 도시는 언제나 나에게 가상 세계, 살아 있음이 너무나 추상적으로 다가오는 사이버 세계였다.

  ― 나의 그림 속 도시는 내가 체험하는 도시의 모습처럼 비현실적이고 개성과 차이가 사라진 무차별적 공간이다.

 

 

    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작품을 만든 화가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 분명합니다. 다만, 세상은 바라보기에 따라 삭막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또 다르게 보이기도 합니다.

 

  모두들 이 세상을 아름다운 곳으로 바라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세상이 그런 곳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세상이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곳', '그리운 곳'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우리에게서 500광년이나 떨어진 별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듯이 우리가 우리들끼리 서로 그리워하며 살아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멀리 있는,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그립긴 하지만,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들끼리 그리워하며 지내면 좋겠습니다. 

 

 

 

 

 

   

 

  1. 한조영 1980년생. 단국대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 석사 졸업. 제30회 중앙미술대전 선정작가. 63스카이아트미술관 지원작가. 가나 NowArt 선정작가. SOMA 드로잉센터 아카이브 등록작가 등으로 선정됨. 개인전 「Darkview」 「On the Dark」 개최 및 다수의 그룹전 참가. [본문으로]
  2. 『현대문학』 2014년 1월호, 342쪽 「표지화가의 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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