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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기계적 암기 위주의 교육에 대하여

by 답설재 2007. 8. 29.

학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기계적 암기위주의 교육에 대하여 

 

 

 

  지난 10월 중순부터 열리고 있는 우리 학교의 체험사진전을 보셨습니까? 아직 보시지 못한 분이 많을 것 같아서 지금도 그대로 두었으니 잠깐만 기회를 내어 꼭 한번 와 보시기 바랍니다.

 

  문제부터 풀어봅시다. "눈이 내렸어요. / 하얀 눈이 내렸어요. / 지붕에도 장독대에도 / ( ) 내렸어요"의 ( ) 안에 알맞은 낱말을 답하실 수 있습니까? 그야 당연히 '소복소복'이 아니냐고 하시겠지요. '많이많이' '엄청나게' '아름답게'는 어떨까요? 또, '저만큼이나' '다 같이' '몰래몰래' '두껍게'는 어떨까요? 한 문제 더 풀어볼까요? "토끼가 ( ) 뛰어갑니다"의 ( ) 안에는 어떤 말이 어울릴까요? 당장 '깡충깡충'이라고 하시겠지요. '살짝살짝' '요렇게 요렇게'는 어떻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해결해야 할 수많은 과제들의 해결방안도 이와 같지 않습니까? 하나의 답만 가능한 문제가 어디 그리 흔하겠습니까?

 

  '성복체험사진전'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여러 사진 중에는 1학년 아이가 잠자리 한 마리를 잡아 자랑스럽게 들고 있는 사진도 있습니다. 그 아이는 운동모자를 쓰고 있는데, 그 입매무시가 무척 자랑스러운 표정이더군요. 사진 설명을 보면 삐뚤빼뚤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세중옛돌박물관에서 잠자리를 잡았다. 좋았다. 참 좋았다. 풀 밟는 소리가 사북사북 났는데도 잠자리는 도망가지 않았다. 잠자리는 눈이 40000 정도일 것 같다. 왼쪽에 20000개 오른쪽에 20000개 꺼 같다. 그런데도 안 도망가서 좋았다."

 

  여러분은 이 설명이 어떻습니까? 그냥 평범하고 유치합니까? 저는 이 설명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처음의 감동을 지금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의성어 '사북사북'이라는 표현이 특히 예쁘고 아름다웠습니다. 이 낱말을, 아마도 담임이나 부모님께서 가르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우선 작은 사전에는 나오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교 도서관에 간 길에 상하권으로 되어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았더니 '사박사박'은 나왔습니다(① 배나 사과, 바람이 든 무 따위를 가볍게 자꾸 씹는 소리, 또는 그 모양. ② 모래나 눈을 잇따라 가볍게 밟는 소리, 또는 그 모양. ③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며 부는 소리).

  저는 이 뜻풀이를 보고 우리의 그 아이가 만든 말 '사북사북'은, 그 아이가 밟았던 풀숲이 제법 짙어서 '사박사박'보다는 더 잘 어울리는 의성어라는 것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한 가지만 더 짚고 가겠습니다. 잠자리 눈의 수는 어떻습니까? 좌우 각 2만개씩 4만개라니 우선 놀랍지 않습니까? 설명을 들었겠지요. 그 아이는 '일 것 같다'며 그 지식을 1학년답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4만개의 눈을 가졌는데도) 그 잠자리가 자기에게 잡힌 것을 신기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잠자리 한 마리를 잡은 순간의 감동을 이만큼 표현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아이들이 하는 일을 신뢰하지 않을 때가 잦고, "속 터진다" 하고, "차라리 내가 해줄게" 부모님께서 그 아이의 일을 대신해주는 일이 많으니, 제가 보기에는 어른이 대신해준 작품은 재미도 없고 배울 것도 없는 삭막한 작품이 되고 맙니다. 어른이 아이의 마음을 알리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그 1학년 아이의 그 순간, 그 표현처럼 가르쳐야 합니다. 초등학생은 달려갈 거리가 아직 아득하므로 더욱 그렇습니다. 4개 혹은 5개의 답 중에서 고르는 훈련도 좀은 해야 하겠지만, 의문을 갖고, 생각해보게 하고(부디 생각할 시간을 좀 주셔야 합니다), 나름대로 해석하고 표현해보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가르쳐야, 황우석 교수처럼 주변 교수들이 "이제 당신이 훌륭한 것이 증명되었으니 학장을 하시오" 하는데도 국민들의 소리를 듣고 "알았습니다. 죽도록 연구나 하겠습니다" 한 것처럼, 장차 어려운 길에 서 있을 때 속시원한 결단을 내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그가 하는 일이 어떤 것이지, 장차 성공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로서는 지금 이 순간 그것이 궁금한 것도 아닙니다).

  '죽도록'이라고 하니, 며칠 전 신문기사가 생각납니다. 광고 홍보회사 '캐럿 USA' 버클린 회장이 "과감하고 혁신적인 발상이 아니면 무(無)에서 유를 창조하기 힘들다"며 창조적 발상을 강조한 인터뷰 기사 제목이 "죽도록 변하든지, 죽든지"였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성공 여부를 떠나서, 장차 이들처럼 멋있는 사업가, 멋있는 예술가, 운동선수, 의사, 변호사, 학자, ……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황 교수나 버클린 회장이나 하루 4~5시간만 잔다는데 그래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난 세기 말에 『제3의 물결』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앨빈 토플러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기능적으로 분류하면 기억력, 관찰력, 판단력, 창조력으로 분류되는데, 기억력과 관찰력은 컴퓨터가 거의 대신한지가 오래고, 더구나 판단력도 컴퓨터가 거의 대신하고 있다며 창조력을 강조하였습니다. 물론 다 중요하겠지만 특히 그렇다는 말이겠지요.

  우리는 이 아이들의 장래를 모두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먼 장래에 유익할 공부를 시키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학교의 작은 일들이 여러분께서 그러한 생각을 하시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5년 11월 5일